6.25 전쟁시 차일혁 경무관의 후방지역 전투와 의의
황 규 진(경찰대학교 교수)
차일혁 경무관은 일제 강점기 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역사적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분입니다. 경찰관으로서 이러한 훌륭한 선배가 있다는 점에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유엔의 국제평화활동에 대해 연구해왔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나 중동의 분쟁지역 평화활동과 차일혁 경무관의 빨치산 토벌 상황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차일혁 경무관의 인생 그 자체가 국제평화활동에 있어서 최고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사실 국제평화활동은 아직까지 성공적이라고 할 만한 모델이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의 그 어떤 나라도 분쟁지역 경찰의 힘으로 내전의 잔당을 성공적으로 소탕하고 복지, 문화, 노동, 교육을 아우르는 민정활동(civil operation)을 펼친 사례는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평화유지군이나 유엔 경찰이 그런 활동을 한 사례는 있지만 내전이 곧 다시 재발하고 학살까지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현지의 사정을 잘 모르고 현지인의 정서를 세밀하게 다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언어마저 통하지 않는 외국의 군인과 경찰이 어떻게 현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작전을 펼칠 수 있겠습니까?
강윤식 교수님의 논문에도 미군정이 일본인들을 내쫓지 않고 요직에 기용하였다는 부분이 강조되고 있는데 다른 분쟁지역에서도 사실은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빨치산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집에 가고 싶고 부모님을 보고 싶다고 하면 그냥 풀어줬다는 일화도 미래의 갈등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전쟁이 종식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이념갈등은 치유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차일혁 경무관은 갈등화해와 치유를 위해 먼 미래를 고려하여 빨치산 활동에 단순 부역했던 사람들에게 ‘빨간 줄이 그어지지 않도록 배려’해 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일혁 경무관의 일제 잔당 소탕과 빨치산 토벌 사례는 그저 지나간 역사의 편린으로서 ‘마른 우물’이 아니고 현재 국제평화활동의 살아 숨 쉬는 모범사례로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용천수’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게다가 먼 미래를 보고 갈등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개개인에게 세심하게 배려한 것도 아직은 국제평화활동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갈등화해와 치유를 위한 모델이며, 이는 국제평화활동의 발전방향으로 미래의 금맥이 될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한국전쟁은 유엔이 설립된 이후 처음으로 21개국 연합군이 조직되어 개입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유엔 국제평화활동에 더 많이 참여해야 할 당위성은 보은(報恩)에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 유엔의 주도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이후 전방의 전투는 중지되었지만 후방의 빨치산은 전투행위를 계속하였고 이를 토벌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군인과 경찰을 동원하였습니다. 유엔의 국제평화활동은 분쟁지역의 군인과 경찰보다는 평화유지군이나 유엔 경찰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전쟁 직후 잔당 소탕작전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유엔의 국제평화활동은 현재 전 세계 17개 분쟁지역에서 법질서 유지, 선거 감독, 안보분야개혁, 난민 구호 등의 복잡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금년 7월말 기준으로 경찰관은 12,199명, 군인 84,056명, 민간 전문가 1,836명이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과거에 비해 경찰의 참여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 평화유지군이 분쟁지역의 내전을 억제하고 질서유지를 하다가 선거를 무사히 치르고 민주정권을 설립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내전이 재발해서 더 많은 인명이 살상을 당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2000년대에는 해당 지역의 군인, 경찰이 스스로 질서유지를 할 수 있도록 한 후에야 평화유지군이 분쟁지역을 떠나는 방향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개념을 안보분야개혁(security sector reform)이라고 하는데, 미션이 교육을 포함하게 됨으로써 훨씬 복잡하게 되었고 군인보다는 경찰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우선적으로 분쟁지역에서 누가 군인을 하고 경찰을 할지 검증이 안 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분쟁 당시 서로 총 들고 싸웠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총을 맡길 인물은 그 분쟁에 개입하지 않았던 순수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을 거의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쟁 당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던 사람을 가려서 군인, 경찰을 뽑고 이들을 민주의식과 인권의식이 충만한 정의로운 군인, 경찰로 교육시켜야 할 당위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검증절차(verification process)라고 부릅니다. 동티모르 미션(UNMIT)에서는 1,200명의 경찰관 후보자들 중에서 검증절차를 통과하고 교육 절차를 마치고 임용된 경찰이 6명이었다고 합니다. 1,200명의 경찰관 후보자들은 대부분 기존의 경찰관이었다고 하니 검증절차가 얼마나 까다롭고 힘든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티모르 미션은 호주의 주도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분류되고 있는데 한국 경찰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미션이기도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에는 최근 새로 뽑은 군인과 경찰이 미국과 유럽의 군인, 경찰을 테러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해서 유엔과 나토에서 고심 중에 있습니다. 엄격한 검증절차를 거치고 민주의식과 인권의식에 대해 충분히 교육을 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분쟁의 여파가 너무 깊이 남아있는 탓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검증절차는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연좌제’라는 용어로도 익숙한데요, 실제로 지금도 검증의 유산이 남아있습니다. 현재도 국가공무원 채용 시 국가정보원법과 대통령령인 보안업무규정에 의거하여 반드시 신원조사를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원래는 공산주의자가 공무원이 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하여 만든 규정인데 현재는 범법자의 공무원 진입을 차단하는 것으로 확대되었지만 어쨌든 아직까지 작동되고 있습니다. 현재도 이념문제라면 조심스러운데 한국전쟁 직후에는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증빙자료를 많이 갖춰놓았다 할지라도 빨치산 활동을 하던 자를 생포했을 경우에는 사법처리 없이 그냥 풀어준다는 것은 당시에는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차일혁 경무관 자신에 대해서도 공산주의자라고 모함하는 경찰 내부의 공격도 있었던 차에 이런 행위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갈등화해와 치유를 위해서 먼 미래를 보고 ‘단순 부역자들에게 빨간 줄이 그어지지 않도록 배려’하였다는 사실은 미래의 국제평화활동의 발전방향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현재 유엔의 국제평화활동은 질서유지, 선거 감독, 안보분야개혁만으로도 벅차서 그 다음 단계인 갈등화해와 치유는 제대로 손대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빨치산 총수인 이현상의 장례식을 치러준 것도 역시 미래의 갈등화해와 치유를 위한 모범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