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옥 박사 칼럼 : 차일혁의 삶과 꿈 64.

남정옥 박사 칼럼

남정옥 박사 칼럼 : 차일혁의 삶과 꿈 64.

관리자 0 1,225 2020.08.03 16:18

차일혁의 삶과 꿈을 마치며 



차일혁(車一赫) 경무관의 필생(畢生)의 업을 다룬 〈차일혁의 삶과 꿈〉을 끝내고 나니 가슴 한 켠이 왠지 휑하고 빈듯한 느낌이었다. 마지막 원고를 쓸 당시만 해도 끝낸다는 생각에 후련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끝내냈고 나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이것이 갈대처럼 왔다갔다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싶었다.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뒤 나타나는 홀가분함을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맥이 탁 풀리면서 뭔가 허전한 그런 기운’이 전신으로 퍼졌다. 일종의 무기력감 같은 것이 엄습해왔다.

그러던 차, 차길진 이사장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필자의 뒤숭숭한 마음을 아는 것 같았다. “〈차일혁의 삶과 꿈〉에 대한 마침표를 찍어야 되지 않느냐?”하는 요지의 말씀이셨다. 흔히 말하는 후기(後記)를 써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뭔가 빠트린 뒤의 허전한 느낌을 들었는데 그러한 필자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전화를 받고나서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었다. 막상 말은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으나,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잠깐이지만 마음을 편히 내려놓아서 그런지 생각만 복잡할 뿐 가닥이 잡히질 않았다. 마치 얼키고 설킨 실타래 같았다. 그렇다고 시간이 마냥 기다리지 않았다. 빨리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고민에 빠졌다. 짧은 순간이지만 긴 고민이었다. 쉽고 편하게 쓰기로 했다. 독자들이 가장 궁금히 여길 것 같은 것에 방점을 두고 쓰기로 했다. 그것은 차일혁 선생을 왜 다루게 됐는지를 밝히고, 그 간의 소회(所懷)도 함께 다루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편한 마음으로 필을 들었다.

그리고 보니 차일혁 선생과 필자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차일혁 선생과 필자의 생몰연대가 같은 연도였다. 바로 1958년이었다. 필자는 그해 2월(양력)에 태어났고, 차일혁 선생은 그해 8월(양력)에 영면(永眠)에 들어갔다. 출생과 죽음이라는 윤회의 법칙을 따르듯 그해에 필자는 인생을 갓 시작했고, 차일혁 선생은 이승과 이별을 하고 있었다. 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2018년 무술년에 차일혁 선생과 필자는 다시 만났다. 전쟁사를 연구하는 필자에게 차일혁 선생의 행적과 뛰어난 전공(戰功)은 좋은 소재거리였다. 그래서 그동안 차일혁 선생을 마음속으로 가득 흠모하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 전쟁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다루고 싶은 인물이 바로 차일혁 선생이었다. 그만큼 차일혁은 흔히 볼 수 있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었다.

38년이라는 길지 않은 삶에도 다양한 삶과 독특한 캐릭터로 점철된 차일혁 선생의 활동과 업적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차일혁의 일생이 표현된 기록을 보면 마치 파노라마와 같은 그림이 연상되고, 대형화면을 통해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휴머니즘이 담겨 있었다.

일제하 민족의식이 뛰어난 열혈 청년에서 항일독립운동가로 변신한 청년 차일혁, 해방 후 서울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일본인 악질형사를 처단하는 의인(義人) 차일혁, 대한민국 건국과 건군에 참여하는 무인(武人) 차일혁, 6·25전쟁을 맞아 벌인 구국의용대장과 빨치산토벌대장 차일혁, 게릴라전의 마지막 명승부가 될 남부군 총수를 사살하고 그의 장례식을 치러준 6·25전쟁의 영웅 차일혁, 전쟁의 와중에도 천년고찰을 지켜낸 문화재 파수꾼 차일혁,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을 온존히 수호한 18인으로 선정된 대한민국의 진정한 영웅 차일혁이 바로 차일혁 선생의 38년의 삶의 성적표였다.

그렇지만 차일혁 선생과의 인연은 쉽게 닿지 않았다. 그러다 차일혁 선생이 정부로부터 ‘호국의 인물’로 선정되고, ‘6·25전쟁의 영웅’으로 선정되면서 차일혁 선생에 대한 학문적 평가를 하게 되는 학술발표회가 전쟁기념관에서 있었다. 필자가 발표자로 참여하게 됐고, 그렇게 해서 차일혁 선생과 학문적 인연을 맺게 됐다. 학술발표회를 앞두고 차길진 이사장은 필자를 위해 많은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차일혁 선생의 전장무대인 전북지역과 지리산 일대를 답사하도록 지원했다. 전쟁연구자에게 사적지 답사는 매우 중요하다. 역사현장을 통해 역사인물과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차일혁 선생의 역사현장을 답사할 기회가 없었기에, 필자의 글에 그나마 생동감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중에서 인상 깊은 몇 장면이 아직 남아 있다. 남부군총수 이현상이 최후의 현장인 지리산 빗점골은 나름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비극적 삶을 살다간 이현상이 최후의 죽음을 맞이한 그 자리에 가져간 막걸리를 부어 그의 영혼을 달래줬던 기억이 있다. 이는 차일혁 선생의 이념을 떠난 마음가짐에서 배운 것이었다. 그리고 차일혁 선생이 이승과의 마지막 작별을 했던 공주 금강 기슭에 가 역시 이현상에 따라줬던 막걸리를 부어 선생의 모습을 깊이 새겨보고자 했다. 그랬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후기를 쓰지 않았더라면 잊혀 졌을 기억들이었다. 차일혁 선생과 남부군 총수 이현상은 강물을 통해 저승으로 갔다. 차일혁 선생은 금강을 통해 갔고, 이현상은 차일혁 선생에 의해 섬진강을 통해 저 세상으로 갔다. 


그런 차일혁 선생과의 깊은 인연이 2017년에 이어졌다. 차길진 이사장의 제의로〈차일혁의 삶과 꿈〉을 연재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6개월 정도를 예상했지만 막상 수록해 내용을 정리해보니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차일혁의 삶과 꿈〉의 여정이 시작됐다. 그때가 2017년 새해였다. 그리고 2018년 4월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총 63회였다. 연재를 시작할 때 목표를 뒀다. 차일혁 선생의 서거 60주기 기일에 맞춰 그에 합당한 책을 내기로 했다. 그런 점에서 나름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차일혁 선생의 연재를 쓰면서 특별히 느낀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차일혁 선생의 아들인 차길진 이사장의 남다른 역사인식과 남이 흉내 내지 못할 정도의 깊은 효심(孝心)과 정성이다. 차길진 이사장에게는 선친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깔려 있다. 어쩌면 차 이사장은 삶은 선친인 차일혁 선생에게 맞혀졌다고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차일혁 선생은 아들 차길진 이사장에 의해 새롭게 태어났다.

그것은 바로 차일혁 선생에 대한 차길진 이사장의 자료 수집과 폭넓은 관심사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차일혁 선생의 활동과 업적에 대한 자료와 증언을 차길진 이사장은 수십년간의 세월을 통해 모았다. 그렇게 차일혁 기록집을 만들고, 책도 썼다. 그런 점에서 차일혁 선생은 당 시대를 열심히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살았다면, 차 이사장은 선친인 차일혁 선생의 그런 업적과 기록들 발굴하여 차일혁 선생의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목’으로 등장시킨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차길진 이사장의 선친에 대한 기록 발굴과 이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차일혁 선생의 뛰어난 전공과 업적도 역사의 뒷안길에 묻혀 졌을 가능성이 컸다. 그것은 차일혁 선생의 활동무대였던 6·25전쟁에 대한 국방부의 공식기록이 차일혁이 돌아가신 이후인 1960년대부터 시작되어 1970년 이후 본격적으로 연구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차길진 이사장은 선친의 자료라면 종이 쪼가리 한 장도 허투루 다루지 않고 수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수집된 자료들이 차일혁 연구의 중요 자료로 활용됐다. 그런 자료들이 있었기에 필자도 차일혁 선생에 대한 다양한 소재를 갖고 연재를 할 수가 있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내용이 부실했을 것이고, 1년여가 넘게 그렇게 많은 분량을 소화했을지도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차길진 이사장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차일혁 선생의 연재를 쓰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의 힘이 컸다. 차길진 이사장 이외에도 차일혁에 대한 자료를 비롯하여 전적지 답사를 동행하며 안내를 해줬던 차일혁기념사업회의 전(前) 사무국장인 김영수 선생을 비롯하여 매주 교정의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고 도와준 차일혁기념사업회 관계자 여러분에게도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연재를 시작할 때 차일혁 선생의 선행연구자인 경찰대학의 강윤식 교수는 본인이 소장하고 있던 자료들을 필자에게 제공해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강 교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특히 1년여 동안 차일혁 선생의 연재를 읽고 격려를 아끼지 않은 애독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Comments